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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_김새별, 전애원 지음 본문

리버리멤버/책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_김새별, 전애원 지음

rriver2 2023. 4. 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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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 네이버 도서

네이버 도서 상세정보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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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게 된 동기 

옛날부터 눈에 들어왔던 책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뤄뒀었다. 그러다 최근에 학교 도서관에 갔다가 무언가에 이끌린 듯 자연스럽게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책을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책 읽는 습관이 망가진지 오래라 책 내용이 뇌리에 맴돌고 맘을 쿵쾅쿵쾅 두드리는 문장이 많았음에도 책을 읽는 시간이 너무 더뎠다. 그러던 중 마이루틴 대표의 세바시 영상을 보게 되었고, 바쁜 시간을 쪼개서 책을 읽어야겠다가 아니라, 책을 읽기 위한 시간을 하루에 할애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학교를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버스 안에서 책을 읽게 되었다. 꽤나 괜찮은 경험이었고,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 쪼그려 앉아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읽는 경험을 너무 색달랐다. 생명의 소리가 깃드는 덜컹거리는 버스 위에서 죽음에 관한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만으로 삶을 살아가는데에 새로운 입김이 느껴졌다.

 요약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가? 이 직업을 듣는 순간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왜인지 세상에 있는 누군가는 이 직업을 가지고 있었겠거니 싶지만, 한번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보지 못한 직업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안타까움에 비통해서 먹먹해지기도 하고, 따사로움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고, 왜인지 모르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의 씁쓸함과 쓸쓸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저자의 직업에 대한 막강한 사명감을 느낄 수 있었다. 고인을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죽음을 받아들이고 삶을 살아가는 태도, 사랑하는 가족을 바라보는 시각, 수많은 죽음을 곁에서 마주하면서 담담해졌지만 여전히 쓰라린 그의 생각을 엿보고 있자니 "삶을 겸허히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죽고 싶다는 말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거고, 이 말은 다시 거꾸로 뒤집으면 잘살고 싶다는 거고, 그러니까 우리는 죽고 싶다고 말하는 대신 잘살고 싶다고 말해야 돼.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아야 하는 건, 생명(生命)이라는 말의 뜻이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기 때문이야.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

역설적이게도 책의 주제와 달리 삶의 채도가 빼진 것 같을 때, 이 책을 읽으면 잃어버렸던 색들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상 깊었던 문구 

1️⃣  돈과 사랑

동화의 끝이 으레 '왕자와 공주는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이듯, 요즘 젊은이들의 꿈은 하나같이 '이름 있는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취직해서 내 집을 장만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 산다'인 것 같다. 불안한 사회가 젋은이들을 틀에 박힌 모습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돈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지만, 그 때문에 훼손당하기에는 사랑이란 너무나 소중하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사실 조금만 잘못 딛으면 바쁨 속으로 나를 몰아넣고 있음을 느낀다. 사회에서 말하는 평등은 가끔 낙오자를 "게으르기 때문"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본다. 사실 바쁘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바쁘지도 않다면 성공할 수는 없을 거라는 사회적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압박 때문에, 바쁨을 자초하는 때가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시간이 없어지고, 사랑하는 이들과 나누는 시간이 없어졌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성공하려고 하는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만들기 위함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들이 없다면 성공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성공에 가까워질 때도, 바쁨에 매몰될 때도 사랑하는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이 깨달음과 동시에 찾아왔던 또 하나의 깨달음은 바쁘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성공하는 이들의 공통점들은 사실 유한하고 그 중에 3개만 내가 완벽하게 따라해도 나 또한 내가 생각하는 성공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3가지가 방향, 꾸준, 시야 라고 생각해서 나에게 맞는 그 세가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 꾸준히 자기개발 중에 있다.

 

2️⃣ 편견 없는 세상

두 아이의 아버지인 나는 내 딸에게 하듯 고인을 향해 마음 속으로 이야기 했다.
'아가야, 다음 생에는 누구나 귀한 대접을 받는 세상에 태어나거라. 슬픔 없이, 아픔 없이 네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는 세상에.'

슬픔 없이, 아픔 없이 네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는 세상에. 라는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편견과 관련된 책을 읽을 때면 숙연해진다. 하지만 동시에 뼛속부터 편견 덩어리인 나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고, 인간이라는 사람이 편견 없이 살 수는 있는 건지 의문이 들때도 있었다. 어쩌면 작가는 고인에게 저 말을 전하면서 인간세상이 아닌 저 이상 너머의 악이 없는, 선만이 존재하는 그런 공간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살면서 접하게 되는 부조리한 편견들, 그리고 그로 인해 희생되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보통과 다르게 생각하려 노력해야 함을 느낀다. 

그리고 "두 아이의 아버지"라는 말이 너무 너무 포근하게 느껴졌다. 어렸을 적 "부모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부모가 씌워주는 우산"과 같이 부모를 안전지대에 빗대어하는 표현들을 들은 적이 많았다. 성인이 되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그리고 지금도 가끔은 안일하게 그 울타리 안에 숨기도 하고, 또 그 울타리는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우산이 되어준 나의 부모님께 너무 감사드린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을 때, 나를 사랑해주는 부모를 만난 일이 어쩌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내가 생각하는 평균이라는 단어가 부모님의 울타리 속에서 바라본 세상의 시각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등 여러 순간에 부모님이 내 부모님이라 가슴 깊이 안도가 될 때가 있다. 그리고 동시에 제대로 된 부모를 만나지 못해 방황하는 아이들을 만나면 마음이 아프고, 부모라는 이유로 자식의 등꼴을 휘게 만드는 어른들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어른이지, 왜 저런 사람이 부모가 된 걸까 등등.. 하지만 나는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고, 앞으로도 사실 내 앞가림에 도와줄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었다. 그리고 내렸던 결론은 "적어도 내 주변은, 내 주변의 사람들은 따스하게 만들어주자"였다. 언젠가 부모가 될 나를 좀 더 나은 어른이 되게 가꾸고, 어린 아이들 앞에서는 좀 더 어른 같이 베풀고 아껴주고, 내 주변 사람들이 나와 함께 더 나은 어른이 되면 그렇게 하나 둘 좀 더 나은,, better을 향해 나아간다면 그렇다면 지구에 있는 아이들이 몇 명은 더 웃지 않을까. 오늘 따라 지구 한 모퉁이를 쓴다던 환경미화원이 생각나는 듯하다.

시/ 나태주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속에 시 하나 싹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1989)

 

3️⃣ 정리된 공간, 정리된 마음

그래도 다행이었다. 청소를 결심했다는 것은 다시 살아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집주인이 방문할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 상황이 조금만 더 지속되었다면 극단적인 생각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제 겨우 스물둘, 사랑을 배워가는 나이였다. 상처가 그녀를 더 단단하고 성숙하게 만들어주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and
딸도 눈가가 촉촉히 젖은 채로 말했다.
"죽을 때까지 이 집을 떠나지 못할 줄 알았어요. 이 집을 떠나는 게 평생 소원이었어요. 소원이 이루어졌어요."
그러고는 너무나 밝게 함박웃음을 지었다.
지금은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는 물건이 없다. 언젠가는 쓸데가 있을 거 같아서, 몇 번 사용하지 않은 새 것이라서, 비싸게 산 물건이라서 필요하지도 않은데 끼고 사는 물건들은 삶을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사랑하고, 쉬고, 꿈을 꾸어야 할 내 집이 너무 많은 물건으로 채워지기를 원치 않는다. 그래서 갖고 싶어 애가 타고, 갖지 못해 속이 상하는 물건도 없다.
...
물질에 대한 숭배와 집착을 조금만 내려놓는다면 우리는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삶은 훨씬 풍요롭고 행복해질 수 있다. 

작년 애플 개발자 아카데미가 끝나고,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던 어른들을 찾아가서 그들이 의식적으로 하는 습관에 대해 물어봤다. 그들은 너무 다양하게 각자의 빛으로 빛이 났기 때문에 그들의 습관을 하나씩만 모아도 세상에서 제일 빛나는 어른이 될 것만 같았다. 많은 대화를 했기 때문에 여러 습관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중에 나는 "청소"와 관련된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근데 말하고 보니까 마음이 어지러워서 방이 어지러운 건지, 방이 어지러워서 마음이 어지러운 건지 잘 모르겠네. 근데 그게 어떻든 나는 방을 치웠어. 그러고 나니까 마음도 같이 정리되더라."

라고 말했다. 이 책에서도 청소에 대한 이야기가 더러 나온다. "쓰레기집"(집 안에 쓰레기가 너무 많아서, 쓰레기 집인지 사람 사는 집인지 잘 모르겠다고.)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매번 마주하게 될 때마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살 수 있는가에 놀란다고 한다. 

나도 쓰레기방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깨끗하게 방을 쓰는 어린이는 아니었다. 사실 그렇게 깔끔한 사람은 아닌지라, 엄마에게 "집 오면 옷 바로 걸고 자는 습관을 가져." , "옷에 뭘 좀 묻이고 다니지마." 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난 그런 아이였다. 근데 정리된 공간에 대한 듣고 나니까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을 먹은 이후로 지금까지도 나는 방을 깨끗하게 쓴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이불 정리를 하고, 집을 나갔다 들어오면 옷을 개어 놓는다. 책상 위에는 정말 필요한 물건들만 두고, 사실 방을 싹 정리하면서 불필요한 물건들도 다 버렸다. 

왜들 그렇게 정리된 공간에서 지내라고 하는지 비우고 생활하고 나니 깨달았다. 물론 기분이 좋은 것도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던 것 같다. 좀 고풍을 떨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이제 물건을 살 때도 신중하게 사기 때문에 이왕이면 돈을 모아서 더 좋은 걸 사게 되고, 방을 치우고 나니 향기가 났으면 좋겠어서 내 방에 디퓨저를 두기도 하고. 방을 깨끗하게 쓰다보니 옷도 깨끗하게 쓰게 되고 몸도 깨끗하게 씻게 되고.. 그러다 보니 좀 겉에서 봤을 때 깔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그러다보니 마음도 깨끗해지고... 그렇게 규칙적인 생활도 하고 효율적이게 시간을 쓰다보니 여가 시간도 생기는 것 같고..

방만 좀 깨끗하게 썼을 뿐인데 다방면으로 23살 인생에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중이다. 

 

4️⃣ 내일은 온다.

문득 부끄러워졌다. 내일을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오늘을 살지 못하고 어제를 후회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날 멋진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 할머니께서 준비해놓으셨던 내일을 다른 분들께 전해 드리러 갑니다. 고맙습니다.'

여기 나오는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주변 이웃들에게 이 냉장고는 앞짚 할아범이, 이 전자레인지는 옆집 아가씨가.. 이런식으로 자신의 물건을 가져가라고 했더란다. 유산이라는 말은 있더라도, 이렇게 물건을 꼼꼼히 정리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내가 아직 이십대라 연세가 있으신 분들의 심정을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나이대가 되면 느끼는 바가 있고, 생각하는 게 있는 듯하다. 옛날에 할아버지랑 오빠랑 같이 공원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친척 할머니의 부고를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솔직히 할아버지가 단 한방울의 눈물이라도 흘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아무 일이 없던 것처럼 하루를 보내시더니 다음날이 되어서야 제주도로 내려가셨다. 부모님은 돌아가신지 오래고, 친구들도 하나 둘 하늘 나라로 가고, 그렇게 죽음에 익숙해지지만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나날들을 보냈던 할아버지의 요즘 삶은 어떨까. 아마 할머니도 이런 마음으로 물건들을 정리하셨던 게 아닐까. 자연의 순리이니 죽음을 받아들이고, 돌아가시기 전에 물건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가장 필요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 남기고 가는 할머니의 내일에 대한 준비는 가슴이 먹먹해지면서도 따뜻했다. 죽음 앞에서 초연하다는 말은 이럴때 쓰는 걸까. 자연의 순리대로 찾아온 내일을 살아가야 하는 젊은 나는 무언가 좀 더 꼼꼼히 하루를 보내야 할 것만 같은 모를 막중한 책임을 가지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5️⃣ 생명(生命)이라는 말의 뜻이 살아 있으라는 명령

죽고 싶다는 말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거고, 이 말은 다시 거꾸로 뒤집으면 잘살고 싶다는 거고, 그러니까 우리는 죽고 싶다고 말하는 대신 잘살고 싶다고 말해야 돼.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아야 하는 건, 생명(生命)이라는 말의 뜻이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기 때문이야.
살아 있다는 건 축복이고 기적이다. 내가 존재한다는 건 우주가 생긴 이래 가장 특별한 사건이다. 태어났으므로 이미 나는 선택받은 존재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 와도 다시 일어나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란 것을.

생명이라는 말의 뜻을 처음 알았다. 그 뜻만으로도 삶의 기운을 얻었다. 이 책을 덮을 때쯤엔 "살아간다"라는 말이 좀 더 담백하고 묵직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사실 무언가를 해서가 아니라 그냥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6️⃣ 나에 맞춰 세상을 바꿀 용기

걱정을 안 하고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정말 정신없이 사느라 짬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변했는데 나만 과거에 멈춰 있을 순 없는 것이다. 과연 세상이 나에게 맞춰주겠는가? 내가 세상에 맞춰야 한다.
...
그리고 생각했다. 세상의 기준에 나를 맞출 것이 아니라 나에 맞춰 세상을 바꿔나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내 인생의 운전대를 쥔 사람은 나이고, 천천히 다른 방향으로 간다고 해서 무엇이 문제겠냐고. 오히려 남과 다른 길을 가는 재미를 소소하게 느끼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을 읽자마자 누군가에게 이 글을 보냈다. 그때는 그냥 "내 인생의 운전대"라는 표현을 쓴 작가가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이 말 자체가 멋져서 왜인지 내 가슴을 북으로 치는 것만 같아서 보냈는데, 지금 공굴려 생각해보니까 아마 난 그 사람과 함께 세상과는 다른 길을 걷고 싶어서 보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시작한 관계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 사람이라면 남들과는 다르지만 내가 꿈꿔왔던 미래를 함께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로 시작했던 관계이기도 하기에. 나는 이 사람과 함께 우리의 운전대를 잡고 힘차게 운전해 나가 우리들만의 소소한 재미를 쫓으며 내 삶 가까이의 세상을 바꿔나가고 싶다. 

 

 일상생활에 적용 

사랑하는 가족들과 얼마나 자주 얼굴을 보고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시나요? 지금 바쁘다고, 더 급한 일이 있다고 미룬다면 나중에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을 상상할 때 무엇이 가장 아쉽고 기억에 남을지 생각해 본다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책을 읽는 동안 여러 문장들이 가슴팍에 안겼지만, 그 문장들을 하나로 정리하자면, "사랑하고 아끼고 서로를 바라보자."였던 것 같다. 이른 아침 폭신한 침대 위에서 책을 읽고 덮고 나와 가슴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 아빠에게 사랑한다고 외쳤다. 엄마는 여린 미소를 아빠는 읭? 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많이 어색했지만 아무렴 어때. 앞으로는 더 많이 마음이 가는 대로 사랑하고 아끼고 표현하련다. 

내 작은 관심이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수 있는 큰 희망이 될 수 있다. 포기하려던 삶을 다시 부여잡고 시작할 수 있는 동아줄이 될 수 있다. 단 한 명이라도 이 책을 읽고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기를,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일깨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이웃주민들에게도 조금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중에 영니스키(별명임..)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어렸을 적부터 엘리베이터에서 이웃들을 만날 때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하더련다. 중학교때 그 친구 집에 놀러갔던 때가 있었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친구 집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 친구가 밝게 인사하던 그날의 엘리베이터는 계속 잊혀지지 않는다. 사실 그렇게 돌아오는 길에 난 그런 따스로움이 부러워서 우리 집 아파트에서도 하고 싶었는데,, ㅎㅎ 부끄러움 때문에 쉽지 않았다. 이 책을 덮으며, 다시금 그런 생각이 스멸스멸 올라왔다. 과연 할 수 있을지?라는 의문이 들지만, 그래도 이번주에 3번은.. 인사를 해보려 한다. 이렇게 빈도를 늘이고, 좀 더 긴 문장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을 때 쯤이면, 설이나 추석때 처럼 명절이 다가올 때면, 냉랭한 우리 아파트에서도 조금은 따스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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